1. 강의석 군. 처음에는 용기있고 멋있는 모습이었습니다.부당한 학내 종교 활동에 대해 용기있게 비판하고, 그것을 위해 1인 시위라는 효과적인 수단을 선택한 행동은 단순히 그 행동만 가지고 평가한다면 아무리 높은 점수를 주어도 넘치지 않습니다. 학교라는 조직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합리성을 당당히 지적하고,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실천적 움직임을 보이는 일은 정말 하기 어렵습니다. 특히나 대한민국 사회에서 말입니다.
저는 자신의 의지가 실리지 않은 무작위 배정을 통해 몸 담게 된 집단의 잘못을 지적한 강의석 군의 행동을 지지합니다.
2. 강의석 군을 비판하는 일은 1번의 내용과 상충되지 않습니까?아닙니다. 단지 저 행동을 지지한다는 것이지 거기에서 끝입니다. 이 글에서는 입학 2년간 학교의 체제에 순응하고, 준수 선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3학년 때 이의를 제기한 일을 비판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성된 글이 아닙니다. 완벽한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서약은 그 자체의 당위성도 주장할 수 없습니다. 허나, 그는 시일이 가고 언론에 노출되는 정도가 커지면서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노출하게 됩니다.
그러나 행위 자체의 의미를 존중하는 뜻에서 교내 종교의 자유를 외칠 당시 행했던 잘못들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겠습니다.3. 강의석 군의 잘못 하나. - 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하리라."기본권 찾아주는 판사될래요." - 2004년 10월 2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
"종교활동은 전교생에 대해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동아리나 동호회 차원의 자율적 활동이어야 한다." - 2004년 12월 27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청소년 100명의 만찬'
"사립학교법 제10조 (설립허가) ①학교법인을 설립하고자 하는 자는 일정한 재산을 출연하고, 다음 각호의 사항을 기재한 정관을 작성하여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략)
1. 목적
(이하 생략)" - 사립학교법 부분 발췌
사립학교를 설립하는 목적은 국가에 의해 허가를 받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종교법인은 '건전한 기독교인의 양성을 통해 건강한 사회 형성에 이바지' 와 같은 내용이 담긴 건학 이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으므로 법보다 우선합니다. 그러므로 강의석 군의 행동은 정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허가 받은 목적을 띄고 학교를 건립할 수 있는 권리 역시 법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의한 종교 강요, 비종교인에 대한 차별은 옳지 못합니다. 하지만 학교는 강요하지 않는 선교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권리가 중요하고 인정받고 싶으면, 반대편의 권리 역시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즉흥적 발언이라고 생각하실지 몰라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다른 학생의 발언 일부를 옮겨옵니다. "이건 누가 대신 준비해준 것이 아니라 저희들이 스스로 준비한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이로 미루어 순간적 말실수가 아닌 평소 생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강의석 군의 발언은 자신의 권리를 우선시하여 학교의 권리를 아예 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공정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종교활동은 전교생에 대해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방과 후 등 별도의 시간을 사용하여 희망자에 한해 실시해야 한다.' 가 되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권리만 찾는다면 자유를 빙자한 횡포밖에 될 수 없습니다. 기본권 찾아주는 판사가 되시려면 고민 좀 하셔야겠습니다.
4. 강의석 군의 잘못 둘. - 서울대학교 법학부가 그렇게 가고 싶으셨습니까.왜 서울대에 지원했어요?
"글쎄요. 서울대 법대랑 다른 학교랑 차이는 크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공부하기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2004년 10월 22일. 조선일보
"그동안 법이 지배자를 위한 수단이라 생각했으나,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모두의 기본권리를 보장하는 것임을 배웠다." 면서 "법 정신으로 무장한 판사가 돼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판결을 내리고 싶다." 고 말했다. - 2004년 10월 30일. 서울신문
"글쎄요. 이건 나중에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인데, 저는 서울대를 폐지하고 싶어서 서울대에 가요. 서울대를 없애기 위해서. 외부에서 아무리 없앤다고 해도 서울대는 없어지지 않고, 내부에서 떠들어야지 서울대가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서울대에서 안 뽑아줄까봐 여태까지 말을 안 했죠. 살펴보니까 서울대 폐지라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변화시킬 순 있을 것 같아요." - 2004년 연말. 한겨례21과의 인터뷰
교육현실 개선을 위해 서울대에 지원했다는 이야긴가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요. 집단의 변화를 위해서는 외부에서 변하라고 요구하는 것보다는 내부의 세력이 변화를 주도하거나 스스로 비판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교육의 제 문제들, 예를 들어 입시지옥이나 대학서열화 등의 중심에는 서울대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현실을 개선하고 싶은데 그걸 하려면 서울대에 입학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평소의 소신이라면 면접장에서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모르겠어요. 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들어가서 변화시키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밝히지 않았던 것 뿐이지 숨겼던 건 아니예요." - 2004년 12월 24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서울대 내부에서 서울대를 개혁하겠다. 일단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정말 소신이 있었으면 면접장에서도 소신 있게 자신의 주장을 밝혔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교수님들이 면접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물어보시는 내용은 지원 동기입니다. 2005학년도 서울대학교 2학기 수시모집 특기자 선발 전형에서 제출해야 하는 자기 소개서에도 역시 지원 동기를 기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위 내용을 보시면 아실 수 있는 내용이지만 수시모집에 지원했을 때의 동기와 1차 전형에 합격했을 때의 동기, 그리고 최종합격 (2차 전형) 후의 지원 동기가 각각 다르다는 사실이 참 신기합니다.
서울대에 입학해보지 않고 서울대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강의석 군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입니다. 학벌사회의 원인이 서울대입니까? 거두절미하고 서울대를 폐지하면 학벌사회가 타파됩니까? 적어도 정상적인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서는 학벌이 과연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지부터 생각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학벌의 역기능이 순기능보다 훨씬 커서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학벌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타파해야 하는지 숙고했어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도출한 생각이 입학해보지도 않은 서울대 폐지이고, 그것을 위해 그 집단에 소속되려 한 것이라면 강의석 군에 대해 논리적으로 숙고해보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5. 강의석 군의 잘못 셋. - 치장하지 않아도 무어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대학 공부와 학내 종교 자유를 얻기 위한 싸움을 동시에 할 수 없을 것 같아 우선 종교 자유를 알리기 위해 휴학을 감행했다." - 2005년 9월 13일. 한겨례
강의석 군이 휴학한 실제 이유는 서울대에 재학중인 학생이면 대부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자세한 전후 사항을 언급하는 일은 사생활 침해에 해당되는 부분이라 넘어가겠습니다만, 서울대 다니시면서도 '낭중지추' 라고 합니다. 법대 재학중인 학생에게 직접 전해들은 말이니 크게 왜곡된 말은 아닐 겁니다. 행동의 원인은 오로지 힘의 의지입니다. 다른 말로 돌리거나 정당화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당화를 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기자가 왜곡합니까? 그러시면 만나지 않으면 됩니다. 기자 만난지 이제 1년이 넘었습니다. 강의석 군. 플라톤 철학이 비판 받는 이유인 현실 세계를 무시한 채 형이상학적 이분법과 도덕만을 더한 전형적인 도덕적 존재론을 사변적으로 표명하는 태생적 우를 동일하게 범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6. 강의석 군의 잘못 넷. - 책은 올바로 받아들여야 합니다."고3이던 지난해 메시아니즘이 발동, 학생들 권익향상을 목표로 학생회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면서도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학생회 간부 자격이 없고, 음악시험을 찬송가로 불러야 하는 학칙의 부당함을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다 깨달은 바로 다음날 1인시위에 들어갔다." - 2005년 9월 19일. 경향신문
제 입으로 "교내 종교의 자유를 외칠 당시 행했던 잘못들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했으니 직접적인 비판은 자제하고, 다만 박노자씨에 대한 제 견해만을 밝힙니다.
박노자씨 책을 이해할 때의 선결 문제는 북유럽 자체가 박노자씨가 그리는 책 내용처럼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북유럽의 제도가 우리나라의 미래상으로 적절한 지표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합니다. 북유럽이 일반 유럽하고도 구별되는 이유는 북유럽 역사의 특수성에 기인합니다. 백 번 양보해 우리나라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치더라도, 북유럽의 과실이 탐스러워 보인다고 과실의 가지를 그대로 잘라 우리나라 토양에 이식하면 그 과실이 똑같이 열리지 못합니다. 천 번 양보해 똑같은 과실이 열렸다고 할 지라도, 그 과실이 우리에게는 독이 든 과실일 수도 있습니다.
7. 강의석 군. 자신의 인생을 사십시오.7번은 먼저 태어나 많이 생각한 인생의 선배 입장에서 주제넘게 건네는 단락입니다.
특정한 목표나 최종 목적을 처음부터 전제하면 이것이 자신의 행위 뿐만 아니라 의식을 지배하게 되고, 마침내 그것에 의해 사회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전제된 목표는 모든 생기 현상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과 근거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 인간 행위와 생기 현상들의 가치는 목표로 가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로 결정됩니다. 당연히 행위는 전부 목표로 가는 길에 있는 '단순한 과정' 에 머무르게 됩니다.
문제는 그 목표라는 녀석이 강의석 군 내부에서 촉발되지 않고 외부에서 수용된 경우,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이 더 커진다는 겁니다. 이 경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인 가능성을 무시하고 이미 성립되어 있는 질서를 상정하여 행위 자체의 의미를 왜곡시켜버립니다. 행위 자체의 가치를 부정하고, 과정으로만 판단하게 되면 인간은 목표의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똑똑하신 분이니 제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박노자씨의 책 대신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2003년에 출간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추천합니다. 부디, 그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실 수 있길.